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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기회를 알아보는 눈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기회라고 알아본 걸 잡을 수 있는 담대함. 나는 살면서 잡은 것도 있고, 어버버 거리다가 놓친 것도 있다. 분당 정자동에 있는 우리의 두 번째 신혼 전셋집이 내가 담대하지 못해서, 엄밀히 얘기하면 무식해서 어버버 거리다가 놓친 기회였다.
27평으로 우리 세 식구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이었다. 집 바로 건너에는 이마트, 차로 5분 거리에 분당서울대 병원, 근거리에 탄천과 정자역, 카페거리와 맛집들이 즐비했다.
강남에 비할 건 아니지만 정자역 주변으로 좋은 학원들이 많아서 훗날 아이 교육하기도 좋은 환경이었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었고, 그냥 이전의 집보다 좋은 전세를 구해서 마냥 행복했던 무지한 나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끝을 모르고 차오르는 서울 수도권 전세 대란이 나며 전세가가 5천 이상씩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만기가 되면 매매가만큼 오른 전세를 추가 지불해야 될게 불 보듯 뻔했다.
그때. 이성은 어디 가고 왜 하필 감성에 지배되었었을까... 철새처럼 더 따뜻한 곳(저렴한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우둔한 생각이 내 마음을 잠식해 갔다. 심지어 스스로 나름 현명했다고 착각까지 했다니...😮💨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하게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날을 잡아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가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우리를 너그럽게 이해해 준 임대인은 아쉽지만 세입자를 구해볼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당시 인근 우리집의 유사 면적은 4억 중반대의 매매가, 전세는 3억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임대인에게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이후로 1주일에 한두 번씩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근데 좀처럼 나가질 않았다. 주로 어르신들이 보러 오셨는데, 탑층인 우리 집을 20초도 안 둘러보고 나가곤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어느 날 임대인께서 전화를 주셨다.
"혹시... 제가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해 주세요."
"음... 괜찮으시면 이 집 저한테 사실래요?"
"..... 네???"
"절대 강요는 아니고요. 시세보다 저렴하게 맞춰볼게요. 사실 저 이 집 갖고 있기 싫거든요. 자세히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매도하고 싶었는데, 마침 나가신다고 하니. 혹시 집을 사실 계획이셨다면 사시던 곳에 계속 실거주로 매수하시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할렐루야를 외쳤어야 했다.
2023년의 나였다면 말이다. 감사헌금까지 했어야 했다.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곳곳에 깃들어 있고, 아이도 잘 자라준 그곳... 이렇게 아름다운 기회...
근데 난 그 오퍼를 거절했다.
(미친놈...)
그냥 내 집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집을 산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전세 대출과는 전혀 다른 큰 금액의 담보 대출을 내 이름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거에 왠지 모르게 쫄았다.
'공식적인 자산이므로 착실히 갚아나가면 된다. 그렇게 부자가 된다.'라는 마인드 셋 자체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고, 그러므로 깡도 없었다.
"억 단위 대출? 내 수준에 4억짜리 집. 아직 아니지..."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거절한 게 현명했다며 착각하고 살았다 🥴
이 멍청이야...
야 이 똥멍청아...
물론 10년 사이에 7억이 오른 건, 문재인 똥볼 지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만. 아무튼 나는 기회는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몸소 체험했다.
나이가 들면서 부동산을 공부하고, 훗날 집을 사고팔면서 이사를 다니다 보니 부의 길은 정치와 마찬가지로 '감성이 아니라 철저히 이성적이어야 한다'라는 걸 배웠다.
지금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고 있다.
비록 가끔 정자동 정든 마을 근처를 지날 때면 철부지에 지식도, 지혜도, 담대함도 없었던 그날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숨고 싶어 지지만...🫣
덕분에 많이 배웠고, 지금도 계속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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